갈매빛깔 그리움이 흐르는 저 너머에 솜다리가 아름다운 잦은 바윗길이 있었다. 화톳불에 어우르는 골짜기로 별이 오르면 밤하늘엔 초롱초롱한 은하수가 추억으로 예 남고, 맑은 바람이 불어 마음이 흔들리고 노랑 빨강 이야기들이 가을 산바람에 엽서처럼 날리면 숲이 울고 나도 가슴앓이에 울먹인다. 아, 또 다시 가을이다.지난여름 산행은 참 어렵고 힘들었다. 우리 부부와 여동생 부부의 주말 북한산행은 개구쟁이 앞니처럼 빠졌고, 산에 간 날은 먹다 남긴 옥수수 알갱이처럼 듬성듬성 했다. 동갑나기 매제는 수술 후 건강을 찾고자 작년 1월부터 우리와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가 내게 와서 추억이 되는 것이다.‘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 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저 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때에 너와 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어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박용래 시인의 귀뚜라미 정강이 시리다는 백로白露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정훈이 형 생각에 노래를 부르다 보니 기억이 새로워진다.이 노래는 ‘설악가’다. 이정훈 형이 1970년 작곡해 많은 산사람들이 불러서 닳고 해진 곡이다. 그해 달빛 고요한 천불동계곡을 홀로
모든 사람이 낮잠을 자는 것은 가을 달 때문-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德 지음몇 해 전 가을 지리산 종주하러 영등포역에서 밤 9시30분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求禮口驛으로 향했다. 왜 구례구일까? 역은 순천에 위치하고 있으나 구례군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로 구례구역으로 명명되었다 한다. 새벽녘 열차에서 내려 구례공영버스 터미널에 가서 해장국 한 그릇 뚝딱 넘기고 성삼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성삼재에 내려 노고단 산장에 닿아 커피 한잔 끓여 마시고 해 뜰 녘에 길을 재촉한다. 반야봉 지나 삼도봉 거쳐 화개재, 토끼봉을 뒤로하면 어
산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전에는 눈보라치는 극지의 산을 오르내리고 정복하려는 살풍경한 상황을 보여 주었지만 요즘은, 바위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 아래 먼 곳을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그림을 보여 준다. 광고 종사자는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산은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힐링healing’과 ‘테라피therapy’라는 생각이 대세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선仙’이란 글자가 있다. 그런데 이 글자는 사람 인人자와 뫼 산山자를 합한 것이다. 고로 사람이 산에 들어가면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설악 공룡능선, 느닷없는 작달비에 젖어 오는 것은 몸뿐이 아니다. 자욱한 가스gas 사이로 설핏 보이는 바위마다 어우르던 저편의 시간이 우두커니 젖고, 아노락anorak 여며도 들이치는 따뜻한 기억들이 한 움큼이다. 심연의 검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재즈 같은 바람비에 몸을 맡긴다. 빗방울마다 그리움 새겨 넣고 낮은 음音으로 한껏 호명하면 맞은 소리 없이 죄다 발자국으로 남는 우중산행이다.비 내리는 산의 경이로움은 귀때기청봉 너덜겅의 돌만큼이나 많다. 건성을 제치고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배꽃의 허밍에 라일락이 춤추던 어느 해 5월, G산악회 교육 후에 있었던 의외의 뒤풀이가 생각난다. G산악회 회원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산객들은 산행 직후 뜨거운 사우나와 탕욕을 즐겼다. 관절에 나쁜 영향을 주니 가볍게 씻기를 권했지만 그들은 땀을 쫙 빼야 몸이 확 풀린다고 했다. 이는 눈동냥,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잘못된 산행지식이다. 산후山後 조리를 거들어 줄 세 가지를 전한다.하나, 산행의 8할은 관절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124승에 빛나는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는 더그아웃에서 어깨와 팔꿈치에 얼음주머니를 댔다. 왜 냉찜질일까?
아침 마당은 반짝이는 햇살로 가득하고, 아내의 꽃밭은 끄트머리 겨울을 딛고 일어서려는 싹수의 아우성으로 봄이 커간다. 숲의 신神께서 기지개 켤 때의 날숨을 내가 들숨 한 것 같아 상서로운 기운에 젖는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설핏 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말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공짜”라는 말이 사뭇 무겁다. 자연에서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나의 뻔뻔함과 음수사원飮水思源의 회초리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음이 부끄럽기 때문이다.요즘 소리 소문이 먼 산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봄꽃 향기처럼 멀리 퍼져간다. 산에서 꽃 사태같이 크고 많은 것들
“우리 학교 운동장은해달별이 걸린 큰 하늘이고교실은 산새 노래하는 우거진 숲입니다.산들바람 부는 너럭바위는우리들의 책상이고마루금 너머 양떼구름은꿈을 그리는 칠판입니다.산으로의 길을 일러주는 스승님은넉넉한 자연이고여러분의 최종학력은한국트레킹학교가 될 것입니다“-윤치술 교장 인사말 중에서.나의 최종학력은 ‘한국등산학교韓國登山學校’ 암벽16기다. 더 높이 오르고 너른 세상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내 청춘을 등산학교로 떼밀었다. 1987년 8월 설악산 권금성 산장에서의 6박7일, 봉화대와 집선봉 바윗길에서 꿈을 키웠고 그 꿈은 내게 빛이
걸작은 개인의 취향을 뛰어 넘는다. ‘도봉道峰’은 이 말의 증명이다. 아름답고 다부진 선인봉 칠백 척尺 벼랑바위와 엄동 삭풍에도 자존自尊 넘치는 우이암, 은둔이 차마 눈부신 오봉마저 담긴 도봉산은 높은 경외와 깊은 감동의 너울로 박진감 푸지다. 도봉 능선에 몸을 두고 눈이며 마음은 우이령 너머 백운대를 부여안으니 ‘북한산국립공원’은 그저 행복의 도가니, 이는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뮤어John Muir(1838~1914)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쁨이다.120년 전 미국에는 열정적인 자연보호가인 존 뮤어가 활동했지만 벌목꾼과 개발업자의
찾아간 은행은 을씨년스러웠다. 이래저래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Untact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이 안쓰러웠는지 주판알 튕기며 북적이던 살가운 1970년대가 응답했다. 추억 속의 상고商高 다니는 동네 형은 은행원이 꿈이라 주판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그 형은 주판 놓는 손가락을 다칠까봐 그 당시 최고의 공놀이인 ‘찜뿌’도 안 하고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깊게 찔러 넣고 다녔다는 것.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손은 너무나 소중했으니까.나도 그랬다. 다치면 산에 못 갈까봐 발 건사에 늘 새가슴이었다. 빈 깡통을 걷어차거나 앙감
아침 산이 찹니다. 우듬지에 덩그맣게 떠있는 빈 까치집이 된바람에 심란해도, 산꼬대의 노래로 핀 서릿발의 아름다움에 설레는 설국雪國을 예감합니다. 산에서 가끔 눈인사 주신 빨간 배낭의 임에게 겨울을 전합니다. 받아 주세요, 산모롱이에서 들이실 펄펄 눈인 듯.하나, 야구모자 나일론 모자 안 돼요면은 젖으면 더디 마르고 나일론은 땀 배출을 막아 축축하며, 큰 차양은 시야를 가려 위험하죠. 노출된 머리로 체열이 왕창 빠져나가기에 머리를 감싸 주는 양털 소재의 비니를 꼭 쓰세요. 모처럼 잘 나온 파마머리 죽는다고 추위에 떨며 그냥 다니지
귀뚜라미 정강이 시리다는 ‘백로白露’에 자네가 전해 온 39년 6개월의 정년퇴임 소식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고 아름다운 일이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영웅이나 존경하는 위인을 한 사람쯤 새기고 있을 터, 나는 크나 작으나 하나의 일에 자신을 쏟아 부은 우직한 삶을 손꼽지. 고등학교 교장으로서 인생의 전부를 교육에 담은 자네 말이네. 오래도록 애썼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가슴팍이 해지도록 보듬어 준 헌신에 경의를 드리네. 자네가 내게 물었지, 산과 함께 인생 2막을 건강하게 맘껏 즐길 수 있도록 산을 알려달라고. 그렇다면 내가 지
산적山賊은 뫼山에 도둑賊으로 ‘산속에 근거지를 두고 드나드는 도둑’이다. 기억한다. 야광 해골스티커 폼 나는 통기타 어깨에 걸치고 경춘선에 청춘을 실었던 그 시절, 내게 쳐들어 온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이란 담시譚詩는 눈 나리는 강촌역 북한강변 모래톱에서 그녀가 느닷없이 던진 이별의 비애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그 오적 흉내쟁이들이 요즘 산동네에도 있으니 이 또한 참 거시기한 충격이다. 이를 지나칠 수 없어 산적에 빗대어 어긋남을 나무라고자 하니 이 글에 쪽팔리면 산적이고, 입 꼬리 귀에 걸리면 산벗이 되겠다.산적 하나, 짝퉁 알
1991년, 산에서의 취사야영이 금지되었다. 계곡물에 쌀 씻어 쉭쉭대는 스베아123 버너에 코펠 올려놓고 넓적한 돌로 누른 후 꽁치 통조림, 감자 넣고 고추장 풀어 보글보글 끓인 찌개를 시에라컵에 덜어 군용 스포크Spork로 앗, 뜨거 비벼먹던 재미가 오졌는데. 아무튼 그 조치에 불만도 많았지만 바른 정책임에 모두 따랐다.그 후 30년 세월에 환경인식이 뿌리내릴 만도 하건만 요즘도 뻔뻔하게 취사하고, 바리바리 싸가서 먹다 버리는 무지렁이가 많으니 이는 자연과의 공존을 저버리는 횡포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술까지 무시로 마셔대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으로 빠져 나오는 네모난 바람을 맞으며 내 안의 나를 보듯 의상능선에서 북한산을 들여다본다. 탈색된 오로라 같은 송홧가루 춤사위가 골짝과 산부리에서 지랄이다. 용혈봉과 문수봉을 넘어 비봉, 제각말까지 갈 길이 멀다. 힘에 부쳐 뒷바람의 도움이라도 받아보려는 쇠잔함이 나를 슬프게 해도 능선처럼 이어지는 요즘 산행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해거름 산발치에서 벚꽃 잎은 뻥튀긴 튀밥처럼 흩어지고 쌓여 눈길을 만들고, 억바위 아래로 돌돌 구르는 골물과 아름드리나무가 뽐내는 자연은 미쁘고도 살갑다. 길재吉再의 시조를 읊자하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 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옛 가수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오래 전 시인詩人대상 애창가요 설문조사에서 첫손에 꼽힌 것을 보면, 화려한 봄날과 대비되는 처연悽然한 이별의 서정성을 높이 산듯하다. 요즘 분홍 진달래와 자주색 처녀치마, 붉은보라 현호색이 애틋한 산길에서 이 노래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나 역시 짧은 봄과의 인연因緣이 서운했음이리라. 피고 지고, 가고 오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먼 산 아지랑이를 붙들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산은 철을 앞당겨 산행이 데면데면하지만 봄볕에 그을린 바위
늘어진 기저귀고무줄 같은 겨울이었다. 가난도 비단 가난이라고 했거늘 길눈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숫눈의 설렘 하나 만들어 주지 않은 채 비실거리다가 ‘태산명동서일필’이 되어버렸다. 내 이리도 못난 동장군冬將軍을 여태 본 적 없기에 은근 부아가 치민다. 꽁무니 뺀 겨울을 구시렁구시렁 씹으며 찾은 남녘의 산 된비알 바위틈의 취산꽃차례 노란 돌양지꽃이 위로가 된다. 먼데 아스라한 마루금 위로 어설픈 아지랑이가 얼핏 어른하고 창가 책상머리 턱 받침에 어리마리 퍼지는 졸음처럼 스르르 봄이 왔다. 설국雪國에 대한 아쉬움은 어차피 뭉그러졌고, 바투
어슴새벽, 파리한 달빛은 나목의 판화를 언 땅에 찍어대고 찬바람은 서슴서슴 골마다 일어선다. 때꾼한 마음으로 안녕을 뒤로하는 나의 행장은눈발에 귀찮은 능선 위 구상나무.한계령 산간도로를 대차게 오르는 문명의 기염은자아로 가려는 발걸음을 주눅 들어 더디게 하고.어슴새벽,가없는 산을 그리는 단조의 뭉근한 소리를 보았다.바랑 가득 피안의 꿈을 담아 오리라던 그는상심 속에 해가 눕고 기다림의 발자국 어지러운 밤들이산꼬대에 쓸려가도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열정으로 쌓아올린 케른이 가쁜 삶의 뒤안길에서 허물어지고절절했던 소망이 낮달처럼 엷어졌음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다가 스치는 그 무엇에 골똘했다. 왜, 그림 속 여인들은 앉아서 이삭을 줍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무릎을 편 자세일까? 서양인은 구릉이 많은 환경에서 진화하다 보니 다리가 길어지고 골반이 커진 탓으로 앉는 자세가 불편하고, 반대로 산이 많은 우리에겐 오르기 쉽도록 다리가 짧아져 쭈그려 앉기에 익숙하고 밭장다리나 안짱다리도 많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체형과 목적에 따라 걸음걸이와 쉬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그 이유로 ‘자연과 호흡’하는 산행山行은 위험요소를 배제하
약 20년 전인 2000년 6월, D일보의 고정칼럼 ‘윤치술의 산길따라 걷기’에 엄홍길 대장隊長의 히말라야 14봉에 관한 글을 썼다. ‘엄홍길의 산과 국민 여러분의 산은 전혀 다르오니 극한의 등산을 흉내 내는 거친 산행을 하지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IMF의 여파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취지로 각 언론은 개고생 끝에 이룬 정상정복의 쾌거를 앞 다퉈 다루었고, 많은 사람들이 산은 저렇게 탱크처럼 올라야 한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히말라야 14봉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1986년 세계 최초로 완등하고 난 15